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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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용의 편리와 부작용
지난 20세기에 인류는 자동차라는 소중한 이동수단을 얻었다. 이 자동차는 19세기 말에 발명되어 불과 한 세기만에 전세계에 널리 퍼져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자동차가 인류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이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가 인류에게 내린 ‘20세기 최대의 재난’이라는 말을 듣게 될만큼 부작용도 크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심각하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매년 교통사고로 각각 5천명 가량이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전체인구가 10억을 넘는 초대형 국가이기 때문에 교통사고 사망자수 5만명은 그리 많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인구 10억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5만명이라면 전체인구를 4,800만명, 즉 우리나라의 전체인구와 비교할때는 약 2,400명 정도이다. 매년 1만명 가량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1/4 수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이다.
선진국도 자동차사고의 피해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매년 4만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연간 1만명 정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우리나라의 6배 이상인 점을 고려한다면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는 우리나라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전세계 수십개 국가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연간 1만명 정도씩 사망하고 있고, 또 다른 수십개 국가에서 연간 4,000~5,000명씩 사망하고 있다.
이렇게 전세계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사망자수가 거의 100만명에 이른다. 최근들어 지구상에서 벌어진 중동 전쟁, 걸프 전쟁, 보스니아 내전 등 그 어떠한 전쟁에서도 1년만에 100만명씩 죽는 전쟁은 없었다.
이러한 면에서 교통사고는 20세기 들어 ‘인류 최대의 재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피해
1960년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과 자동차 대중화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교통사고의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화가 시작된 1960년부터 1999년까지 40년 동안 전국에서 모두 25만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600만명이 중?경상을 당하였다.
교통사고로 인해 전국에서 약 5만 가정이 어린 자녀를 잃었고, 10만 가정이 부모중의 한 사람을 잃어 결손가정이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정성을 다해 키운 어린 자녀가 어느날 갑자기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을 때 부모가 겪는 고통이란 실로 표현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부모 혹은 남편이나 아내를 잃어 일그러진 가정의 모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 구체적인 사연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보도되지 않아서일뿐, 우리나라의 수많은 가정들이 교통사고로 인해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을 소득수준과 비교하면 1999년을 기준으로 할 때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가 8.3명으로 국민소득이 2천달러 수준인 루마니아나 페루와 비슷하다. 자동차 생산이나 국제 교역량은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앞서 있는데 교통사고율만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면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년 중에 다시 IMF 이전인 1만달러 수준을 회복하였는데, 교통안전은 여전히 과거 2천달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여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은 교통안전 선진국에서 치루자
우리 나라보다 IMF 경제위기를 먼저 겪고, 지금도 어려움 속에 빠져 있는 나라중에 멕시코와 브라질이 있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국민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율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와 비슷한 교통안전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으로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현재의 1만명선에서 절반인 5천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교통안전수준은 우리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라보다도 크게 뒤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현재와 같은 사고다발 국가로서 세계 축구인의 잔치인 월드컵을 치룰 수는 없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아직은 희망과 가능성이 있다. 우리 민족이 짧은 기간에 국민적 합의와 목표를 가지고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였듯이, 국민적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최단시간내에 ‘교통안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선진국인 나라치고 교통안전면에서 선진국이 아닌 나라는 없다. 나라의 힘은 질서와 안전에서 나오고, 무질서와 불안은 나라의 발전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1만명에 이르는 현재의 상태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한다. 정부는 교통안전 선진국을 만드는 일이 곧 국민의 의식을 개혁하고 사회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기초가 된다는 인식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세계인의 축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반드시 ‘교통안전 선진국 한국’에서 치루어야만 한다.
올바른 운전자가 불량한 운전자를 이겨내야 한다
앞으로 교통안전의 개선을 위하여 우리가 실천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현대 산업사회는 소유(To have)를 자기 가치 및 존재의 확인 수단으로 삼게 되었으나, 앞으로의 사회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주고 받으며 관심을 함께 하는 새로운 존재(To be)의 추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동안 우리 나라 운전자들의 관심은 주로 어떤 차를 소유하느냐(To have what car) 하는 물질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떤 운전자가 되어서(To be what driver), 어떻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느냐 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여 교통안전을 개선해 나가야만 진정한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그 동안의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성장시켜 우리 사회를 보다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는 교통안전을 지키는 양질의 운전자들이 교통안전을 어지럽히는 불량한 운전자들에게 결코 지거나 밀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자동차 대열이 꼬리를 물고 있는 교차로에서 자신이 진입하면 다른 방향의 차량을 가로막아 서로 못가게 된다는 것을 알면 멈추어 있어야 하는데, 뒤에서 다른 차량이 한두번 빵빵대면 얼른 앞으로 나가서 위반하고 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자기의 길을 지켜야 하며, 다른 운전자가 같이 위반하자고 졸라댈 때 재빨리 타협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에게 자동차 이용은 매일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흔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선진 교통안전의 정착은 끝까지 질서를 지키는 운전자들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운전자들보다 숫적으로 우세하고 심리적으로도 우세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앞으로 교통안전을 지키는 우량한 운전자들이 힘을 합하여 우리나라를 “교통안전 선진국”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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